조경의 잠재력, 식물의 가치
좋은 나무를 고르는 방법
광화문광장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 CA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CA조경)는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용역으로 공사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준 소장은 수목답사에 참여하지 못할 때마다 팀원 중 한 명을 번갈아 답사를 보냈고, 나는 광화문광장 설계팀 팀원으로 서울시 공무원, 공사감리 담당자, 식재공사 담당자와 함께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2021년 12월 23일은 충청북도로 답사를 갔던 날이었다. 전문가들과 함께 충청북도를 돌아다니며 광화문광장에 식재될 나무가 어떻게 선별되는지 관찰할 수 있었고, 그 일련의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가장 먼저 서울시 공무원이 설계도면과 자재수급현황표를 보고 오늘 선별해야 할 나무의 수종과 규격, 수량을 파악했다. 그다음으로 식재공사 담당자가 농장주에게 전화를 걸어 농장에 방문해도 되는지 허락을 받았고 해당 농장에 찾아갔다. 농장에서 수형이 괜찮은 나무를 발견하면 둘레를 재서 규격을 확인했고, 설계사에게 설계 의도에 적합한 나무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도 특별한 이견이 없으면 나무를 끈으로 묶어 나무가 다른 현장에 팔리지 않도록 표시를 해놓았다.
전문가들이 좋은 나무를 판별하는 기준은 나무의 수형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를 발견할 때면 모두가 ‘이 나무 참 잘생겼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나무가 광화문광장에 식재될 만한 나무인가’라는 물음에는 전문가마다 조금씩 의견이 달랐다. 서울시 공무원은 공기에 차질에 없도록 수급 일정을 맞출 수 있는 나무가, 공사감리 담당자는 수피에 상처가 없고 옹이가 없는 깨끗한 나무가, 식재공사 담당자는 규격에 맞는 나무가 좋은 나무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좋은 나무를 선별해야 했을까?
나는 그 답을 2022년 2월 15일 전라북도로 답사를 갔던 날 찾았다. 그날 조용준 소장은 내게 직립형 느티나무를 찾아와야 한다고 했다. 잎이 높은 지점에서부터 잎이 달리고 수관폭이 좁은 느티나무를 구해오는 것이 조용준 소장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었다. 수목 답사에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들은 느티나무 중에 그런 나무는 없다며 차라리 다른 수종으로 변경하라고 말했지만, 조용준 소장은 직립형 느티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의견을 끝까지 고수했다. 조용준 소장은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면서도 멀리서도 광화문이 보여야 해서 직립형 느티나무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공사감리 담당자가 조용준 나무라고 불렀던 직립형 느티나무는 식재 담당자의 수소문 끝에 발견되었고, 지금은 해치마당에서 광화문광장을 올라오는 화강석 스탠드 일대에 식재되어 있다.
다시 묻는다. 좋은 나무란 무엇이며 좋은 나무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광화문광장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은 단순하다. 수형이 아름다우면서도 설계가의 의도를 구현해낼 수 있는 나무가 좋은 나무이며, 좋은 나무를 찾기 위해서는 발품을 많이 파는 수밖에 없다. 만약 직립형 느티나무는 없다고 말렸던 관계자의 말에 더 발품을 팔지 않았다면, 광화문광장 설계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나무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엔가 좋은 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발품을 팔다 보면, 고생 끝에 좋은 나무는 온다.
식재 과정에서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
CA조경 재직 당시 DIGICO KT 도시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이어 DIGICO KT와 감리용역을 체결하여 감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교목은 대부분 초기에 설계했던 대로 시공되었지만, 관목과 지피·초화류는 대부분 설계했던 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관목과 지피·초화류는 해마다 유행하는 수종이 다르고 농장마다 생육상태가 좋은 수종이 달랐다. 작년에 계획한 설계도면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 시공이 들어간다면 좋은 공간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생육상태가 좋은 수종을 찾아다녔고, 생육상태가 좋은 관목 및 지피·초화류를 발견할 때마다 식재 수종 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리고 2022년 7월은 매일 KT 현장으로 출근했다. 오전 6시 반에 식물을 가득 담은 트럭 2~3대가 현장에 들어오면, 식물을 하차하고 구역별로 식물을 나눠 배치했다. 그리고 파란색 락카를 들고 식물이 심어질 위치에 동그라미 영역을 그려나갔다. 동그라미 영역 안에 식물 이름 혹은 번호를 써넣고 식재 요청을 했다.
누군가 내게 식재공사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식물을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한 뼘씩 띄어서 심어주세요.’라고 식재 간격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고,‘일렬로 줄지어 심지 마시고, 2개, 3개 묶어서 자연스럽게 심어주세요.’라고 원하는 식재 연출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공사현장에는 ‘심은 식물은 위치를 옮기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식물을 심기 이전에 어떻게 심어달라고 요청하거나, 심는 도중에 이렇게 심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괜찮아도, 심어진 식물을 뽑아서 다시 배치하면 안 된다. 그때의 나는 이 규칙을 알지 못했다. 나는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보이면 식물을 뽑고 다시 배치해서 다시 심어달라고 요구했다. 아마도 내가 적당히 했으면 적당히 눈감아줬을지도 몰랐겠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여기저기 식물을 뽑고 다니는 바람에, 식재 팀 아주머니들이 공사 도중에 나랑 일 못하겠다고 공사 그만하겠다고 말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2년 8월 6일이 광화문광장 개장식이었고, KT 현장도 광화문광장 개방에 맞춰 오픈 준비를 하려다 보니 현장은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갔다. 무더위에 소금 알약을 먹고 버텼던 날도 있었고, 장마와 겹쳐 우비를 입고 작업해야 했던 날도 있었지만,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자 했던 마음은 모두가 진심이었고, 그 마음들이 모여 좋은 공간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땀 흘리고 같이 고생한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다.
조경에서 식물은 꼭 필요할까?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조경기준(국토교통부고시 제2021-1778호) 제2장 제4조에 따르면, 조경면적은 식재된 부분의 면적과 조경시설공간의 면적을 합한 면적으로 산정한다. 식물이 심겨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식물이 심겨있지 않은 공간 또한 조경공간으로 인정된다는 의미이다. 법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식물만 심어도 조경공간이 될 수 있지만, 조경분야에서 식물은 핵심 경쟁력이며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CA조경에서 종로구청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수행하면서, 건축, 토목, 구조설계, 소방, 전기, 친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분야에서 공사비를 줄이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주장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토목과 구조설계 분야 담당자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공사비를 줄이면 건물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친환경 분야 담당자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공사비를 줄이면 에너지 효율 기준을 맞출 수 없어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경분야 담당자였던 나는 조경에서 공사비를 줄이면 안 되는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무 수량을 줄여도 법적 식재 수량 기준은 통과할 수 있었고, 시설물 수량을 줄여도 그저 공간이 휑해 보일 뿐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어 보였다. 그날 다행히 조경 분야는 검토 대상이 아니었는지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다른 분야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왜 필요한 존재인지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영역을 단단하게 지켜내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결국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일이 곧 전문성을 만든다. 조경분야가 조경 영역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은 결국 식물에 있다고 느꼈다. 조경 분야와 건축 분야는 떼려야 뗄 수 없고, 식재 영역을 제외한 포장, 시설물, 배수 등의 영역은 이미 건축 분야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일조량을 분석해 식물 수종을 선택한다든지, 층별 프로그램에 성격에 맞는 식재 테마를 제안하고 식물이 살 수 있는 생육환경을 조성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조경은 식물에 관해서 확실히 강점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조경에게 묻고 싶다. 이대로 충분한가?
조경의 가치, 식물의 가치
테슬라(Tesla)를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남다르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 주식을 보유한 국내 개인 투자자는 2023년 기준 약 70만 명으로, 투자금액은 애플,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투자금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그러나 그 많은 한국인 중에 테슬라가 한때 자동차보다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번 돈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최근 이산화탄소는 돈으로 환산하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를 도입하는 국가가 점점 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2005년 탄소거래소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System, ETS)를 도입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탄소시장을 운영해 오고 있다. EU 환경청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 수입은 2017년 약 7조 원에서 2022년 약 56조 원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2012년 제정된 배출권거래법에 따라 한국거래소가 배출권거래소로 지정되었고 2015년 1월부터 시장을 개설하여 운영해 오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의 기후대응기금 2022년도 결산에서 배출권 판매에 따른 수입은 약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산림부문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으며, 산림부문의 다양한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및 흡수량을 매년 측정하여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국립산립과학원에서는 산림부문 온실가스 감축 대안을 설정하고, 한국임업진흥원에서는 산림부문 배출권거래제도를 통해 나무를 심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실적을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제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 조성된 천년 숲이 30년간 약 1,957t의 온실가스를 흡수해, 2024년 탄소배출권 준거 가격이 1t당 1만 1,500원으로 산정된 것을 미루어봤을 때 예상 수익이 약 2,250만 원에 달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 사회에서 우리나라 조경가의 자리는 어디일까? 2022년 11월 15일, 나는 디지코가든(DIGICO GARDEN)의 탄소저감량을 계산해달라는 KT 전략기획실의 요구를 받았던 적이 있다. KT 전략기획실은 디지코가든을 홍보하기 위해 보도자료로서 사용될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농촌진흥청과 조경 학회지 자료를 토대로 디지코가든 탄소저감량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느꼈다. 디지코가든에 식재된 교목은 구상나무, 귀룽나무, 능수버들, 당단풍, 매화나무 등을 포함하여 21개의 수종이 160주 식재되었다. 그중에 탄소저감량을 계산할 수 있는 교목 수종은 단 5종에 불과했다. 관목은 금목서, 은목서, 낙상홍, 댕강나무, 덜꿩나무 등을 포함하여 34개의 수종이 5,586주 식재되었고, 지피·초화는 감동사초, 실새풀 브라키트리차, 솔정향풀, 무늬이삭여뀌 등을 포함하여 67개의 수종이 27,620본 식재되었다. 그중에 탄소저감량을 계산할 수 있는 관목 및 지피·초화 수종은 단 12종에 불과했다. 결국 KT 전략기획실과 협의하에 탄소저감량에 관한 보도자료 내용은 삭제하기로 했다.
도심 속에 식물을 심고 식물이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하우를 가진 조경은 탄소중립 사회에서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코가든(DIGICO GARDEN)의 탄소저감량을 계산하며 현재까지의 연구와 자료로는 조경공간의 가치를 증명해 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교목뿐만 아니라 관목과 지피·초화류에 해당하는 식물의 가치를 데이터로 정량화할 수 있고 조경공간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해 낼 수 있을 때 조경분야도 탄소중립 사회에서 전문분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복수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 입사해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디지코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무를 익혔다. 그의 꿈은 정원과 기술을 접목하는 디자이너다. 새로운 기술과의 접목으로 나음이 있는 다름을 탐구하는 차세대 조경가이다.
milkyst38@naver.com
